호러 마니아로서 여름이 오면 공포 콘텐츠는 빼놓을 수가 없다. 컨져링 유니버스, 민속촌 귀굴 등을 비롯한 귀신의 집을 다녀오고, 공포 영화도 몇 편 보고. 이제 남은 건 소설뿐이다. 따라서 제목에 지역 이름이 들어가는 한국과 일본의 공포소설을 각각 읽었다.

🌺 불귀도 살인사건 (전건우/북다)

"불귀도에 발을 들여놓은 자, 피를 토하고 죽으리라!"
미스테리 호러 소설이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돌아오는 업보, 집단 광기와 악행, 그리고 구원이 되지 못한 복수.

개인적으로 복수의 끝에 허망함이 남는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읽어 온 것들이 허탈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 싶은 감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귀도의 결말은 그보다는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기승전결의 완벽한 배분 때문인 것 같다.

흡입력 있고, 스피드 있는 전개 덕에 짧은 시간 안에 후루룩 읽었지만, 사실 폐쇄된 섬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 자체가 아주 참신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설정과 소재의 웹툰, 영화, 소설 등이 이미 많기 때문에 읽는 내내 기시감이 느껴졌달까.

그러나 플롯이 잘 짜여졌고, 떡밥 회수도 깔끔해서 오싹함 땡길 때,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는 괜찮은 것 같다.

크게 와닿는 메시지나 감명 깊은 구절은 없었지만, 왜인지 유선이 동굴에서 탈출하는 장면만은 기억에 남는다. 나의 절망이자 트라우마가, 사랑이자 의지로 탈바꿈되는 순간.


🌲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반타)

처음에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괴담을 모아 놓은 소설이라 생각했다. 인터뷰, 인터넷 글, 제보편지, 라이브 실황 등 다양한 매체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터라 금방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진가는 중반부를 지나며, 전혀 다른 곳에서 펼쳐진 전혀 다른 이야기인 줄 알았던 괴담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하며 드러난다.

요컨대, 산발적인 이야기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어느 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더라, 는 식이다. 그렇기에 난 이 책의 묘미는 괴담 그 자체보다도, 떡밥이 회수되고 퍼즐이 완성되는 그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냥 무서운 이야기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면 '무서운 게 딱 좋아' 시리즈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작가의 치밀한 떡밥 회수 능력 및 어디서 들어본 듯한 괴담 이야기임에도 깔끔하게 봉합시켜 결말을 낸 역량에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소설임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특별한 메세지나 교훈이 없다. 목적이 따로 없는 불가해한 저주와, 자연재해처럼 희생양이 되어버린 피해자들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며 읽을 수 있다.

난 한국의 공포물을 보다 보면 언제나 공포심보다는 측은진심, 안타까움, 답답함, 분노 등의 감정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건 우리나라 문학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한'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무서운 귀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끔찍한 피해를 입었던 자가 귀신이 된 것이더라, 그러므로 성불시켜야 한다 - 하는 식의 스토리 말이다. (이전에 읽었던 '불귀도 살인사건'도 한의 정서를 담고 있었고, 그렇기에 귀신 이야기보다는 한에 사무친 개인의 복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일본의 공포물은 한국 문학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한국이 잦은 전쟁과 침입에 의해 오랜 세월 견고해진 '한'의 정서를 보여준다면, 일본의 귀신은 아무래도 '원'의 정서 아니겠는가? 원인도, 목적도, 멈출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오로지 상대를 해하기 위한 원한의 감정.

그렇기에 한국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원통함과 사무침, 구조의 전복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대신 무력함과 절망감, 그리고 속절 없이 휘둘리는 피폐함만이 남을 뿐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일본 공포 특유의 음침함과 무력함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공포물로서는 의미가 살아난다. 귀신에 대한 동정도, 안타까움도 이 작품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새 가해자가 되어버린 무력한 피해자의 발악과 체념이 존재한다. 소설을 읽는 나는 오싹함과 소름만을 느낀다.

안타까움, 분노, 카타르시스 대신 오로지 '공포' 하나만을 쭉 밀고 나가는 작가의 줏대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글을 술술 읽어나갔고, 감정의 여운 없이 깔끔하게 책을 덮고 털어낼 수 있었다.

다음 주,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는 각색이 많이 되어, 괴담들로 퍼즐을 완성해 가는 '떡밥 찾기'보다는 괴담 자체의 '무서운 이미지'에 더 주목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묘미가 되는 부분을 생략해버린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공포 매니아로서 간만의 기대작을 놓칠 순 없는 법이다.

모든 전말을 다 알게 된 상태로 원작을 한 번 더 즐기고 싶기도 하다. 복습은 오디오북으로 해 봐야지.


'Review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솔직한 독후감]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저주토끼 (11) | 2025.08.12 |
---|---|
[진짜 솔직한 독후감] 프로젝트 헤일메리 / 체셔 크로싱 (7) | 2025.07.24 |
기괴하고 재밌는 일본 만화 추천 (7) | 2025.04.17 |